자료실
연구자료
관련기사

관련기사|

국어 정책에 발상의 대전환을|

국어 정책에 발상의 대전환을

조선일보 오니니언 전상인 서울대 교수 2015.03.30

글쓰기 능력은 국력인데 한글 학자·운동가 '단속'이 글쓰기 행위 자체 위축시켜
漢字·방언 배척하는 단견과 多문화 외면한 純血 벗어나 開放 통해 국어 외연 넓혀야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빨간 펜 선생님께.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선생님 인터뷰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말 교열박사' 이수열씨가 신문 칼럼의 잘못된 표현을 빨간 사인펜으로 고쳐 보내는 바람에 떨고 있는 언론인이나 교수, 문인들이 적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에 관한 언론 보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20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열 가지 신문을 챙겨 보다가 요즘에는 두세 개만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80대 후반 연세 탓이겠지요. 그래도 빨간 펜의 '교정 본능'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저는 우리글을 바르게 지키려는 선생님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변명의 여지없이 글쓰기 후진국입니다. 사실 정부나 기업, 대학 할 것 없이 선진국일수록 올바른 글쓰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글쓰기 능력은 한 나라의 국력이자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판사들은 법적 판단의 오류보다 작문의 과실을 더 수치스럽게 여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일반인에서 전문가까지 글을 제대로 쓰는 이가 드뭅니다.

당연히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사실 저도 선생님의 편지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저의 글쓰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갈수록 글쓰기가 더 두려워집니다.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가 글쓰기를 괴로워한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취업 포털 커리어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64.4%가 우리말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을 힘들어했습니다. 가장 어렵다고 말한 것은 맞춤법이었고, 구어체와 문어체의 구분, 띄어쓰기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말 글쓰기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은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맞춤법' 서비스 현황에서도 확인됩니다. 그곳에서는 기존의 전화 응답과 온라인 문답에 이어 2011년부터 트위터를 통한 대국민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금년 중에 서비스가 모바일 메신저로까지 확대될 정도로 대성황이라고 하니, 이 또한 평소에 글쓰기를 부담으로 느끼는 민심의 방증이지 싶습니다. 상담원들이 제일 자주 받는 질문은 띄어쓰기에 있어서 '생각하다/생각 하다' '전화받다/전화 받다' 가운데 어느 게 옳은가, 표기와 관련하여 '아니에요/아니예요' '알맞지 않은/알맞지 않는' 가운데 무엇이 바른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과연 이런 것들이 글쓰기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일까요? 오히려 사람들의 글쓰기 울렁증만 자극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쓰기 수준이 낮은 것에는 국어학자나 한글운동가, 교열 전문가, 어문(語文) 관료들의 책임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문법이나 어휘, 문체, 구문 등에 대한 그들의 과도한 '군기(軍紀) 단속'과 '풍속 규제'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원칙과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글쓰기 행위 자체가 위축되고 만 것입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로서 광복 이후 언어의 주권 회복은 대단히 시급했습니다. 국어는 국가 건설과 국민 형성의 핵심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단기간에 이룩한 국어 발전의 성과는 놀랍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문정책과 한글문화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는 국가주의적 계도와 민족주의적 강박이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이는 작금의 시대정신에 역행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국어의 성장 정체를 초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자를 버린 것부터 과오였습니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유입된 동아시아의 국제어로서 현재 우리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중국을 빼놓고 세계화를 말할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단수 표준어 정책에 따라 일거에 사투리를 배척한 것도 우리의 언어 자원을 스스로 줄인 처사였습니다. 지역의 문화적 보고를 챙기지 못한 단견의 소산이지요. 영어식 문장이네, 일본식 한자입네 하고 따지는 순혈주의 언어 정책도 교류와 다문화, 공존이라는 문명사적 대세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보화 혁명에 따라 손 글씨 시대가 저무는 만큼 맞춤법 역시 키보드 등의 기계적 특성을 적절히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올바른 우리글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21세기 언어 환경에 대처하기에는 빨간 펜이 최상의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신 지금은 개방과 유연화를 통해 국어의 탄력 증강과 외연 확대를 꾀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싫든 좋든 언어의 집은 현실이고 그 현실과 함께 진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수 작성일
300 외국인 교수의 눈으로 본 한자교육 어문정책관리자 2486 2015.04.03
299 '사려'가 뭐죠? … 한자 몰라서 우리말을 외국어처럼 외우는 아이들 어문정책관리자 2620 2015.04.02
국어 정책에 발상의 대전환을 어문정책관리자 2400 2015.03.30
297 “한자를 배우면, 똑똑해져요” 어문정책관리자 2442 2015.03.27
296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그 남자가 ‘재원’이라고? 어문정책관리자 2628 2015.03.26
295 연천향교, 인근 군부대 인성교육 어문정책관리자 2643 2015.03.25
294 한자를 다시 봅시다 어문정책관리자 2320 2015.03.25
293 KBS라디오 ‘라디오 중심 목진휴입니다’ - 김창진교수 출연 file 어문정책관리자 2666 2015.03.25
292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67% '찬성' 어문정책관리자 2676 2015.03.20
291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찬반 논란 재점화 어문정책관리자 2463 2015.03.20
290 한국교총, 시도교육감협의 “한자병기 반대는 시대착오 어문정책관리자 2484 2015.03.19
289 한자사용에 대한 인식조사 file 어문정책관리자 2394 2015.03.19
288 청소년 발언대 -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어문정책관리자 2338 2015.03.19
287 연합뉴스 기자의 참담한 한자 실력 어문정책관리자 2386 2015.03.18
286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논란…오는 7~8월 확정 땐 2018년부터 적용 어문정책관리자 2301 2015.03.16
285 [기고]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에 답함 어문정책관리자 2349 2015.03.16
284 우리는 왜 한자(漢字)를 배워야 하는가? 어문정책관리자 2819 2015.03.13
283 [한수진의 SBS 전망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찬반…"국어생활 비정상.. 어문정책관리자 2576 2015.03.13
282 [바튼소리]한자병용 반대와 찬성을 보며 어문정책관리자 2602 2015.03.12
281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찬성한다 어문정책관리자 2377 2015.03.11
후원 :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사)한국어문회 한자교육국민운동연합 (사)전통문화연구회 l 사무주관 : (사)전통문화연구회
CopyRight Since 2013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All Rights Reserved.
110-707.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6 낙원빌딩 507호 (전통문화연구회 사무실 내) l 전화 : 02)762.8401 l 전송 : 02)747-0083 l 전자우편 : juntong@juntong.or.kr

CopyRight Since 2001-2011 WEBARTY.COM All Rights RESERVED. / Skin By Webarty